17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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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o 0 1 04.30 05:23
17일(현 17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회의사당 내 도서관에서 한 직원이 최근 보수 공사를 마친 도서관 내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국회도서관이 일반에 공식적으로 개방된 건 도서관 건립 229년 만에 처음이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 특파원 《“천장의 아름다운 벽화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17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국회의사당의 도서관. 이곳에서 만난 10대 소녀 악셀 양은 가족들과 도서관 내부를 둘러본 뒤 천장 벽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의 동생 콤 군도 “천장에 그림이 정말 많았다”고 거들었다. 이 도서관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7년 후인 1796년 완공됐다. 역사가 229년에 달한다. 그간 입법이나 국가 행정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찾는 프랑스 정치인과 관료들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지만 오랜 역사로 많은 책과 시설이 낡은 상태였다.》 원래 국회의원, 정부 고위 공직자 등만 출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최근 1년간의 보수 공사 끝에 ‘정치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는 상징적인 취지를 담아 일반에도 개방을 결정했다. ‘세계 문화유산의 날’ 등 특별한 날 이벤트성으로 신청자들에 한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일반인에게 문을 연 건 처음이다. 현장에서 만난 팡세 샤포토 국회 부행정관은 개방 취지에 대해 “국회가 프랑스 국민을 위한 장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치를 국민의 품으로” 프랑스 국회도서관 내부 2층에서 내려다본 전경.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도서관 내부로 들어가니 5개의 돔으로 이어진 약 400m²의 천장에 고풍스러운 벽화가 펼쳐졌다.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이었다. 돔 중앙은 천장이 하늘로 열려 있는 듯 푸른색으로 가득 채워졌다. 천장 한쪽 끝에는 무기를 휘두르며 야만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성이 지난 16일 경기도 김포 서정인 선생의 빈소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는 이종민 교수. 이종민 제공 스승으로 아버님처럼 모셨던 서정인(1936~2025·4·14)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문학이 말문을 닫고 시대가 조용히 그를 배웅하는 이 순간에도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그분을 향한 이 깊은 애도와 존경의 마음을 글로라도 붙들어야겠다. 위대한 작가 한 분이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너무도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서이기도 하다.선생은 평생을 문학으로 증언하신 분이다. 하지만 일상을 공유한 사람에게는 작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발언과 행동이 먼저 떠오르게 마련이다. 대충을 용납하지 않는 원칙주의자,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던 순결주의자. 하지만 술 한잔 들어가면 어깨춤 절로 추며 ‘번지 없는 주막’을 목청껏 부르던 예인. 수줍음도 많지만 자존심은 더 강해 세속의 기준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낭만주의자.이런 분을 곁에서 모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줍음도 달래고 자존심에도 상처를 주지 않는 상황을 그야말로 ‘연출해야’ 한다. 고 서정인 작가. 한겨레 자료사진 정년을 기념해 문학론집 ‘달궁 가는 길’(2003)을 엮을 당시에도 그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이 단행본은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아온 소설가 서정인 선생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독창적이며 열정적인 강의와 연구를 통해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교수요 학자로, 또 시속에 쉽게 영합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시대의 파수꾼으로 살아오면서 그가 키워 온 독특한 문학세계는 한국 소설사에 큰 발자취를 이미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만의 소설 세계에 대한 총체적 안내는 상업주의의 도도한 물결에 점점 물들어 가고 있는 작금의 문단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머리말을 대신하여’ 중)취지는 당당했다. 하지만 진척은 더디기만 했다. 선생의 방해 때문이다. 원고 청탁 등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을 꺼리셨다. 작가란 작품으로 말해야 17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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